파친코 pachinko

파친코 pachinko –  구슬을 기계 장치로 튀겨 구멍에 넣은 후 여러가지 지형이나 기계 등과의 충돌을 통해 그림의 정해진 짝을 맞추면 일정 액수의 돈이 나오는 도박 기기입니다. 한국에는 1980년대 말 일본에서 수입되었습니다. 빠칭코, 빠칭고, 빠찡고, 빠징고 등 여러가지 발음으로 불립니다.

최초의 파칭코는 1920년대 핀볼에서 파생되었다고 전해진다. 쇠구슬을 쏘아올려 어떤 구멍에다 집어넣으면 그 가게 주인이 경품을 주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파칭코’란 명칭도 이 쇠구슬을 빠르게 쏘아올리는 모습에서 새총이 연상된다 하여 붙여진 것이다.
혹은 게임기 자체가 쇠구슬을 ‘파칭'(피슝) 쏘아서 ‘코로코로(데굴데굴) 굴리는 모습을 보인다는 설에서 유래했다고도 본다.

지금과 같은 도박형 파칭코의 원형은 1950년대에 생겨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때부터 어떤 구멍에다가 구슬을 집어넣으면 20개의 구슬이 나오는, 문구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메달 따는 기계’ 스타일의 기계가 만들어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 당시 기계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으면 최배달을 다룬 한국 영화 바람의 파이터를 보면 된다.
정태우가 연기한 감초 배역이 이 기계 하나 구해서 돈버는 장면이 나온다. 아니면 오사카 동물원역 앞 통천각 주변의 낡은 게임센터를 찾아보자.
그 곳에 원조급 파칭코 기계가 40대 정도 모여 있다.

파칭코업의 성장은 일본의 전후사정과 관련이 있다.
전후 일본에서는 군수물자용으로 대량생산되었던 볼베어링이 엄청나게 남아서 처치가 곤란해졌는데 이 시기 볼베어링을 급료대신 지불하는 등의 상황이 이어지자 볼베어링을 이용한 놀이가 유행했고, 그 과정에서 파칭코 구슬로 볼베어링을 이용하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파칭코업계의 암흑기는 크게 두 번 찾아왔는데 첫 번째는 1954년 연발식 파칭코기계가 정부에 의해 금지되었을때 찾아왔다.
이 당시 일본 전국에 약 5만개나 있었던 파칭코가게는 단 몇 년 사이에 9000개까지 줄어들었다.
특히, 이 시기에 일본인업자들이 파칭코업에서 손을 많이 뗐는데 당시 심각한 차별로 제대로된 일거리를 가지기 힘들었던 재일한인들은 어쩔 수 없이 계속 파칭코업에
종사했고, 이후 파칭코업이 다시 살아나면서 상당히 높은 시장점유율을 확보할 수 있게되었다.

두번째 암흑기는 1970년대에 잠깐 찾아왔는데, 그 원인은 바로 전설적인 슈팅 게임인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등장이었다.
도박을 잠시 소강시키는 일반 게임의 위엄 다만 오히려 이는 어디까지나 반짝이었고, 사실 마루한같은 재일 한인이 세운 파칭코기업은 70년대부터 80년대까지 급격히
성장했다. 70년대 일본은 엄청난 경제성장 중이었고, 스페이스 인베이더의 붐은 파칭코업을 잠깐 주춤하게 만드는 정도였다.

본격적으로 파칭코가 도박이 되기 시작한 때는 1980년대로, 슬롯머신 스타일의 추첨 릴을 도입하면서다.
그리고 이는 80년대 중반에 산쿄에서 ‘피버’라고 하는 기종의 파칭코를 만들어 내면서, ‘리치’라는 것이 등장해 도박사의 기대감을 더욱 부풀게 만들었고, 90년대 후반에 궁극의 카드리딩 기기가 나오면서 도박성이 완성된다.
이게 왜 위험하냐면, 이전의 기기는 돈을 직접 500엔, 1000엔씩 집어넣으면서 게임을 하게 되지만, CR은 카드를 충전해서 쓰게 되므로 한 번 충전하면 돈 나가는 게 직접 확인하지 않으며 잘 보이지 않는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